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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모순을 꿰뚫은 실학자, 이익과 『성호사설』의 날카로운 통찰

메이트레인 2025. 7. 31. 11:18

조선의 모순을 꿰뚫은 실학자, 이익과 『성호사설』의 날카로운 통찰

조선의 모순을 꿰뚫은 실학자, 이익

1. 시대를 초월한 비판의 눈: 실학자 이익은 누구인가?

조선 후기, 경세치용(經世致用)의 실학이 꽃피던 시대에 한 지식인이 나타난다. 바로 성호 이익(李瀷, 1681~1763)이다. 그는 경기도 안산에 거주하며 벼슬보다는 학문과 비판에 몰두한 인물로, 실사구시의 자세로 조선 사회의 모순을 깊이 통찰했다. 이익은 노론과 소론의 당파 싸움으로 혼란스러웠던 정국에서, 시대를 바꾸려는 의지를 글로 실현했다. 특히 그의 대표작 『성호사설(星湖僿說)』은 당시 지식인 세계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지닌 사상서이자 백과전서적 저작이었다.

 

2. 『성호사설』이란? — 조선 지식인의 백과전서

『성호사설』은 ‘사소하고 사사로운 이야기’라는 뜻을 담고 있지만, 내용은 전혀 사소하지 않다. 이익은 천문, 지리, 경제, 정치, 농업, 군사, 역사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현실 사회를 분석했다. 방대한 분량은 총 30권에 이르며, 단순한 지식 나열이 아니라 “왜곡된 현실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개혁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익은 이를 통해 시대의 병폐를 고발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데 집중했다.

 

3. 신분제와 토지제도의 모순, 정면으로 비판하다

이익은 조선 사회의 뿌리 깊은 병폐로 불합리한 신분제도와 토지 소유 구조를 지적한다. 양반은 특권을 누리면서도 생산 활동에는 참여하지 않고, 반면 상민과 천민은 과중한 세금과 부역에 시달렸다. 그는 이러한 불균형이 사회의 붕괴를 불러온다고 보았고, 토지제 개혁을 통해 생계를 안정시키는 것을 우선시했다.

이익은 ‘한전론(限田論)’을 주장하며, 모든 백성이 일정량의 토지를 소유하고 그 이상은 제한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이는 지주 중심의 농업 사회에서, 소작농의 생존을 위한 급진적인 제안이었다. 결국 그는 “백성의 생존 없이는 국정도 없다”고 강조했다.

 

4. 과학과 자연관, 실사구시의 철학

『성호사설』은 단순한 사회비판서가 아니다. 이익은 자연현상과 과학적 사고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는 홍수, 가뭄, 별의 운동 등 다양한 자연 현상을 관찰하고 이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려 했으며, 맹목적 미신이나 종교적 해석에 의존하지 않았다. 이는 당시 유교적 이념에 얽매인 학자들과 구별되는 실용적 태도였다.

그는 “경험과 관찰에 기반하지 않은 학문은 백해무익하다”고 보고, 지식의 진정한 가치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훗날 정약용, 박제가 등 후기 실학자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5. 권력 비판과 양심적 지식인의 자세

이익은 조선의 지배층에 대한 직설적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성호사설』 곳곳에는 양반의 무능, 부패한 관료, 비효율적인 군사제도, 불합리한 법 제도에 대한 날선 비판이 드러난다. 그는 양반층이 진정한 선비라면 백성의 고통을 먼저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현실 정치에 대한 분석을 피하지 않았다.

그는 벼슬길을 포기하고 학문에 몰두했지만, 그것은 현실 도피가 아닌 비판자의 위치에서 사회를 더 잘 바라보기 위함이었다. 학문은 곧 실천이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은 당시에도, 지금에도 울림을 준다.

 

6. 오늘날 읽는 『성호사설』의 의미

『성호사설』은 단순한 고문서가 아니다. 그것은 조선 후기의 복잡한 사회와 혼란 속에서 길을 찾으려 했던 한 지식인의 지적 투쟁이자 기록이다. 불합리한 구조에 대한 비판, 백성을 위한 제도 개혁의 필요성, 그리고 자연과학에 대한 통찰까지… 이익의 사상은 여전히 유효하다.

오늘날 우리는 다시금 『성호사설』을 통해 “지식인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리고 이익은 묵묵히 답한다. “지식인은 시대의 아픔을 꿰뚫고,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말해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