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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아래 개경, 고려 수도를 수놓은 야시장과 밤문화의 비밀

메이트레인 2025. 8. 11. 14:35

달빛 아래 개경: 고려 수도를 수놓은 야시장과 밤문화의 비밀

고려 수도를 수놓은 야시장

1. 낮과 밤, 두 개의 얼굴을 가진 도시 개경

고려의 수도 개경은 낮에는 정치와 군사, 행정의 중심지로서 관청과 시장이 활발히 움직였지만, 해가 지면 또 다른 생명력을 드러냈다. 성문이 닫히면 교외로 나가는 길은 차단되었지만, 도시 내부에서는 등불이 하나둘 켜지며 밤의 장터가 시작됐다. 특히 개경은 개성천을 따라 물류가 들어오는 상업 도시이자, 송나라·여진·일본 등 외국 상인들이 드나드는 국제 무역항과 연결된 경제 거점이었다. 이런 배경 덕분에 밤에도 상거래가 이어질 필요가 있었고, 자연스럽게 야시장이 발달했다.

 

2. 야시장의 풍경 – 등불 아래 살아나는 상권

야시장에서는 낮보다 더 자유로운 분위기가 흘렀다. 좌판에는 막 잡아온 민물고기, 갓 수확한 채소와 곡식, 산에서 채취한 약초가 올려졌고, 상인들은 큰 목소리로 호객을 했다. 또 다른 구역에서는 비단, 도자기, 금속 공예품, 향료와 같은 고급품이 거래되었는데, 특히 송나라산 청자와 향신료는 부유층 부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거래 방식도 다양했다. 현물 교환, 은전 결제, 장부 외상까지 허용되어, 상인과 고객 간 신뢰가 형성되면 장기간 거래가 이어졌다.

등불은 주로 기름등이 사용되었으며, 시장 통로마다 일정 간격으로 세워져 어둠을 걷어냈다. 일부 기록에는 등불빛이 수십 보 밖에서도 반짝였다고 전해, 당시의 번화함을 짐작할 수 있다.

 

3. 공연과 오락 – 시장을 문화의 장으로 만들다

야시장은 단순히 사고파는 공간이 아니라, 공연과 오락이 뒤섞인 복합문화 공간이었다. 시장의 넓은 공터에서는 광대들이 줄타기를 하고, 꼭두각시 인형극이 아이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가면극 ‘탈놀이’나 남사당패의 묘기는 밤손님들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술집과 찻집은 늘 문을 열어두고 손님을 맞았으며, 기생들이 부르는 노래와 춤이 이어졌다. 상인과 손님, 나그네가 한데 어울려 술잔을 부딪히며 흥정을 하거나 세상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개경의 밤을 더욱 활기차게 만들었다.

당시의 이런 공연문화는 고려의 예술 감각과 해학정신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키는 역할도 했다.

 

4. 치안과 규제 – 경제와 안전의 줄다리기

밤이 되면 범죄의 위험도 커졌다. 고려 정부는 야시장 활성화와 세수 확보를 원했지만, 동시에 도적과 불법 도박을 막아야 했다. 이를 위해 ‘순라군’이 밤마다 주요 거리를 순찰했고, 일정 시간 이후의 통행을 제한하기도 했다. 하지만 개경은 인구와 상업 규모가 컸기 때문에 완벽한 통제는 어려웠다. 특히 대형 장터 주변에는 소매치기나 사기꾼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상인들끼리 자체적으로 경비를 조직해 대응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상황은 현대 도시에서도 여전히 반복되는 ‘경제 활성화 vs. 치안 강화’의 과제를 당시에도 이미 고민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5. 국제 무역과 문화 융합의 중심지

개경 야시장의 독특한 점은 외국 상인의 비중이었다. 송나라 상점에서는 중국 차와 자기, 종이와 비단이 거래됐고, 여진 상인은 모피와 말, 사냥도구를 팔았다. 일본 상인은 옻칠 공예품과 특유의 단도, 어획물 등을 가져왔다. 외국어가 오가는 풍경은 시장을 ‘작은 세계’로 만들었고, 고려 시민은 이를 통해 이국의 문물과 문화를 직접 접할 수 있었다.

이런 국제 교류는 고려의 식문화, 복식, 생활용품에 변화를 가져왔고, 개경을 단순한 수도가 아닌 동북아 무역 네트워크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6. 사회 계층을 넘나드는 밤의 교류

야시장은 계층의 경계를 느슨하게 만들었다. 낮에는 엄격한 위계가 작동했지만, 밤의 시장에서는 부유한 사대부 부인과 서민 여인이 같은 가게에서 물건을 고르고, 상인과 귀족이 술집에서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일이 흔했다. 장터의 흥정과 대화 속에서 정보가 오가고, 결혼이나 사업 기회로 이어지는 인연이 생기기도 했다. 이렇게 야시장은 경제·문화뿐 아니라 사회적 네트워킹의 장이었다.

 

7. 오늘날로 이어진 야시장의 유산

개경의 야시장은 조선 한양의 시전 상권과 근대기의 심야 시장 문화로 이어졌다.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야시장, 야간 페스티벌, 심야 쇼핑의 뿌리에는 이미 고려 시기의 경험이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개경의 사례는 도시의 야간 경제가 단순히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경제·문화의 핵심 동력 중 하나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달빛과 등불 아래에서 이뤄진 활발한 거래와 문화 향유는, 고려인들의 삶이 결코 낮의 엄격한 질서 속에만 머물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 총평
개경의 야시장은 경제, 문화, 외교, 사회를 아우른 복합 공간이었다. 국제 무역의 중심이자, 계층을 넘나드는 교류의 장이었고, 현대적 도시 야간 문화의 선조였다. 이 역사적 경험은 오늘날의 도시 설계와 야간 경제 활성화 논의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