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매와 함께한 제국의 기상 — 발해인의 사냥 문화와 매사냥 기술
메이트레인
2025. 8. 14. 14:04
매와 함께한 제국의 기상 — 발해인의 사냥 문화와 매사냥 기술
— 귀족의 위세, 외교의 선물, 그리고 발해 사회를 비춘 매의 날개 —
1. 발해와 매사냥의 만남
발해(698~926)는 고구려의 후계 국가로, 만주와 연해주, 한반도 북부까지 아우르던 광대한 영토를 지녔습니다.
이 지역은 산림·초원·습지가 혼재한 천혜의 환경을 갖추고 있었고, 이는 다양한 야생 동물의 서식지이기도 했습니다.
발해 귀족과 왕실은 이러한 자연환경 속에서 사냥을 생활과 권위의 일부로 즐겼습니다. 그중에서도 매사냥은 단순한 수렵이 아니라, 정치·외교·문화가 결합된 복합적인 활동이었습니다. 다 부족, 다 민족으로 이루어진 국가의 통합과 결속을 위한 행사로써 진행되곤 했었던 것입니다.
2. 귀족 스포츠로서의 매사냥
발해의 매사냥은 주로 왕과 귀족, 무관 계층이 주도했습니다.
매를 훈련해 꿩, 토끼, 오리 같은 중·소형 동물을 사냥하는 모습은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지배층의 권위 과시였습니다.
사냥 장면은 왕의 용맹함과 통치 능력을 보여주는 정치적 무대였으며, 귀족들의 모임은 일종의 사회적 네트워킹의 장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매사냥은 준비와 훈련, 인력이 많이 필요한 활동이었기 때문에 부와 여유가 있는 계층만이 지속적으로 즐길 수 있었습니다.
3. 매의 선별과 훈련 과정
발해인들은 매사냥에 사용될 매를 매우 신중히 선별했습니다.
매의 날개 길이, 부리 형태, 눈빛, 비행 속도 등을 기준으로 적합한 개체를 골랐습니다.
훈련은 ‘순치(馴致)’라 불리는 과정으로 시작되었는데, 매가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손질하고 먹이를 주면서 신뢰 관계를 쌓았습니다.
이후 사냥감 모형이나 살아 있는 소형 조류를 이용해 비행·추격·급강하 기술을 익히게 했습니다.
매와 매사냥꾼 사이의 호흡이 맞아야 성공적인 사냥이 가능했기에, 숙련된 매사냥꾼은 왕실과 귀족들에게 매우 귀중한 인재로 대우받았습니다.
4. 외교 선물로서의 매
발해의 매사냥 문화는 단순히 국내에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발해는 매를 중국 당나라와 일본에 외교 선물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당나라의 사신 기록에는 발해가 보내온 매가 비상한 속도로 사냥감을 낚아채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으며, 일본 『속일본기』에도 발해가 매를 전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당시 매는 희귀하고 귀한 존재였기에 외교 관계에서 발해의 위상을 높이는 상징적 매개체가 되었습니다.
5. 계절과 지역에 따른 사냥 풍습
매사냥은 주로 가을부터 겨울에 걸쳐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깃털이 단단히 여물고 체력이 충만한 시기로, 매가 사냥하기 가장 좋은 환경이었기 때문입니다.
발해 영토는 한랭 기후와 다양한 지형이 공존했기에, 평지에서는 꿩과 토끼, 강과 습지 주변에서는 오리와 기러기 같은 수조류를 사냥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매는 하늘에서 목표를 포착하고 급강하하여 사냥감을 제압했으며, 사냥꾼은 말을 타고 이를 추격하며 협력했습니다.
6. 매사냥과 발해인의 생활상
매사냥은 귀족의 오락인 동시에 발해 사회의 자연 이해도를 반영했습니다.
매를 다루려면 기후, 계절 변화, 동물의 습성, 먹이 사슬 등 자연에 대한 깊은 지식이 필요했습니다.
또한 사냥한 고기는 연회나 제사 음식으로 쓰였으며, 매의 깃털은 장식품이나 의례용 도구로도 활용되었습니다.
이러한 문화는 발해가 단순히 농경 국가가 아니라, 수렵·기마·무예가 조화를 이룬 복합 문명이었음을 보여줍니다.
7. 발해 매사냥의 역사적 의미
발해의 매사냥은 단순한 전통놀이가 아니라, 국가의 정체성과 외교적 전략을 담은 문화였습니다.
이를 통해 발해는 주변국과의 관계에서 자신들의 자원과 기술을 과시했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귀족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또한 국가의 통합 및 결속을 위한 수단으로써 활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오늘날 매사냥은 일부 지역에서 무형문화유산으로 전승되고 있지만, 발해 시대의 매사냥은 당시 국제 정세 속에서 국가 이미지를 구축하는 외교 도구였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