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세계를 놀라게 한 화약 강국의 비밀 — ‘화통’과 최무선의 혁신
한국 역사에서 고려는 ‘불교의 나라’, ‘몽골의 침략에 맞선 나라’로 흔히 기억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잘 알지 못하는 또 하나의 얼굴이 있습니다.
바로, 세계를 놀라게 한 화약 기술 강국이자, 최초로 화약 무기를 체계적으로 전장에 도입한 나라였다는 사실입니다.
그 중심에는 고려의 비밀 병기 **‘화통(火筒)’**과, 이를 만든 과학자 최무선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고려가 어떻게 세계 군사사에 남을 혁신을 만들어냈는지, 그 숨은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몽골의 침공과 화약 무기의 발견
고려가 화약을 접한 것은 13세기, 바로 몽골과의 전쟁을 통해서였습니다.
1231년부터 시작된 몽골의 침공은 고려를 벼랑 끝으로 몰아붙였고, 무려 30여 년에 걸친 항쟁 속에서 고려는 새로운 기술들을 배우게 됩니다.
몽골군은 당시 중국 남송으로부터 화약 병기를 받아들이고 있었고, 고려군은 이를 전장에서 목격하며 큰 충격을 받습니다.
몽골의 무서운 화력 앞에서 고려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고, 당시 관리였던 최무선이 그 선봉에 섭니다.
그는 중국에서 비밀리에 화약 기술을 배우고 돌아와, 고려의 전통 기술과 결합해 독자적인 화약 병기를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불과 쇠구슬을 뿜어낸 고려의 비밀 병기, 화통
그렇게 탄생한 무기가 바로 **화통(火筒)**입니다.
화통은 금속이나 대나무 관 속에 화약과 쇠구슬을 넣고 불을 붙여 발사하는 병기로, 지금의 대포와 유사한 원리였죠.
작동 원리는 간단했지만 위력은 엄청났습니다.
화통이 터질 때 발생하는 굉음과 불기둥, 쇠구슬이 날아드는 모습은 적군의 전열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습니다.
특히, 화약을 경험해보지 못한 왜구에게는 그야말로 ‘지옥의 불’이었습니다.
이 무기는 단순히 하나의 무기로 그치지 않고, 화살을 쏘아 올리는 화시(火矢), 대형 화통인 화포(火砲), 연막탄 역할을 하는 연화탄(煙火彈) 등 다양한 형태로 발전합니다.
고려는 이렇게 화약 병기 전체를 하나의 체계로 발전시켜, 전투마다 상황에 맞는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했습니다.
이는 당시 유럽보다도 앞선 발상이었고, 실제 전장에서 큰 성과를 거두게 됩니다.
고려 해군, 세계 최초로 화포를 사용한 전투 — 진포대첩
1380년, 고려의 군사력과 화약 무기가 빛을 발한 전투가 있습니다.
바로 **진포대첩(鎭浦大捷)**입니다.
이때 일본에서 건너온 왜구 500여 척의 함대가 고려의 서해를 침략했고, 고려 수군은 화포와 화통을 배에 장착해 출전했습니다.
전투가 시작되자 고려군의 함선에서 불기둥과 쇠구슬이 쏟아지며 왜구의 함선을 불태웠습니다.
결과는 압도적인 승리. 왜구의 함선 대부분이 불타 침몰하고, 수천 명의 왜구가 전사했습니다.
이 전투는 세계 해전사에서 화포가 체계적으로 사용된 첫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즉, 고려는 당시 유럽보다도 빨리 해전에 화약 무기를 도입한 것입니다.
이후 왜구의 활동은 크게 위축되었고, 고려는 그 위신을 크게 세울 수 있었습니다.
최무선, 고려를 지킨 숨은 과학자
이 모든 혁신의 중심에는 **최무선(崔茂宣)**이 있었습니다.
최무선은 과거에 급제한 관리였지만, 전쟁과 왜구의 피해를 보며 무기 개발에 뜻을 세웁니다.
중국 원나라에서 몰래 화약 제조법을 배우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고려에서 자체 생산에 성공합니다.
당시 고려 조정은 화약과 무기를 만들기 위해 ‘화약 제조소’인 **화통도감(火筒都監)**을 설치해 체계적으로 기술을 관리했고, 이는 오늘날 국방과학연구소의 전신이라 할 만합니다.
왜 우리는 몰랐을까?
이처럼 놀라운 업적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고려의 화약 무기와 진포대첩을 잘 알지 못할까요?
그 이유는 바로 조선으로의 왕조 교체와 함께 무기 기술이 정치적으로 억제되었기 때문입니다.
조선은 유교적 명분과 명나라와의 관계를 중시해, 자체 기술보다 명나라에 의존하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최무선의 업적도 오랫동안 역사 속에 묻혀 버렸죠.
하지만 최근에는 여러 연구를 통해 고려의 기술력이 재조명되며, 한국이 중세 군사기술사에서 결코 뒤처지지 않았음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고려, 자주국방의 상징으로 기억되길
몽골의 침략과 왜구의 약탈이라는 위기 속에서도 고려는 스스로 길을 찾고, 세계사에 남을 무기 혁신을 이루어냈습니다.
‘화통’과 화포, 진포대첩의 승리는 단순한 전투의 승리가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자주국방의 결실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고려를 ‘불교의 나라’로만 기억하는 대신, 세계를 앞섰던 과학 기술과 그 정신을 함께 기억한다면 더욱 뜻깊지 않을까요?
고려의 불타오르는 화통처럼, 우리의 자긍심도 뜨겁게 피어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