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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존재한 ‘미혼모’와 ‘양녀제도’

조선시대에도 존재한 ‘미혼모’와 ‘양녀제도’
— 조선 사회의 숨겨진 여성과 아이들의 이야기.

조선 사회의 숨겨진 여성과 아이들의 이야기

조선시대에도 ‘미혼모’가 있었다?

조선은 유교적 가족제도가 뿌리 깊게 자리한 사회였지만, 그 틀 밖에서도 여전히 인간사는 반복되었습니다. 특히 전쟁, 기근, 노비 해방, 납치와 유기 등의 사유로 인해 혼인 제도 밖에서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한 여성들, 즉 ‘미혼모’는 조선시대에도 엄연히 존재했습니다. 다만 이들의 존재는 공적인 기록에서 지워지거나 왜곡되기 일쑤였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조선 후기 노비 해방과 도망노비 증가로 인해 많은 여성들이 불안정한 사회적 지위에 놓이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임신 후 남성에게 버림받는 사례가 적지 않았습니다. 또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전쟁의 여파로 수많은 백성들이 유랑하면서 가족과 생계를 잃고, 여성들은 ‘약탈’이나 ‘유린’의 대상이 되기 쉬웠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미혼모의 증가로 이어졌지만, 그들은 성리학적 규범 속에서 ‘부도덕한 여자’로 낙인찍히며 극심한 사회적 차별을 겪었습니다.

여성 스스로 아이를 키우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출생 직후 아이를 유기하거나 사찰, 민간의 보호소, 심지어 관청에 맡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조선 사회는 이들에 대한 제도적 보호나 복지 체계를 거의 마련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곧 ‘양녀제도’라는 민간의 자구적 해결방식으로 이어집니다.


‘양녀제도’란 무엇이었나?

조선시대 양녀제도란, 미혼모나 부모가 없는 아이, 혹은 유기된 여아를 타 가정이 ‘딸’로 삼아 기르는 관행을 말합니다. 하지만 이 양녀는 법적 지위가 아닌 일종의 ‘편의적 양육’에 가까웠습니다. 대부분 가난한 가정의 노동력 보충, 혹은 나중에 며느리로 들이기 위한 목적에서 양녀를 들였으며, 그 실상은 오늘날의 입양과는 성격이 전혀 달랐습니다.

심지어 일부 지역에서는 ‘양녀’를 통해 가문 간의 혼례 약속을 미리 정하거나, 부잣집에 팔려가는 형태로도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경우 양녀는 ‘양딸’보다는 ‘가사노동력’ 혹은 ‘장래의 며느리 후보’에 가까운 위치에 놓였습니다. 역사서 <승정원일기>나 <일성록>에도 양녀의 학대나 유기 사례가 간간이 등장하며, 양녀는 사회적·법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양녀제도가 항상 부정적이었던 것만은 아닙니다. 일부 인도주의적 사례도 기록에 남아 있으며, 유교적 윤리와 자선정신에 따라 진심으로 어린 생명을 돌본 사례도 존재했습니다. 특히 양녀를 교육시키고 정식으로 혼인까지 시켜준 경우는 상대적으로 드물지만 긍정적인 예로 평가받습니다.


국가의 대응은 없었는가?

공식적인 차원에서 조선 정부는 미혼모나 양녀에 대해 적극적인 복지 제도를 마련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법령이나 제도가 존재하긴 했습니다. 예컨대 조선 후기에는 일부 지방 관청에서 유기 아동을 수용하고, 일정 기간 보호하는 제도가 시행된 바 있으며, 불교 사찰이나 천주교 공동체 등에서도 종교적 자선 활동으로 유기된 아이들을 돌보는 사례가 있었습니다.

또한, <경국대전>에는 유기된 아이를 발견했을 경우 인근 주민이나 관청이 이를 신고하거나 구조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으며, 아이를 해하거나 학대할 경우 형벌이 내려지는 규정도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 규정이 제대로 적용되는 경우는 드물었고, 여전히 아이들과 여성들은 사회적 약자로서 방치되기 쉬운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조선 여성과 아이들의 ‘보이지 않는 역사’를 바라보다

조선시대의 미혼모와 양녀제도는 단지 ‘비정상적인 가족’이 아니라, 당시 사회의 경직된 규범 속에서도 살아남으려 했던 사람들의 생존 방식이었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이들을 다시 조명하는 이유는, 단지 과거를 비판하거나 낭만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그늘 속에서 말없이 살아갔던 수많은 여성과 아이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들이 겪은 현실을 이해하려는 데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역사를 ‘권력자들의 이야기’에서 ‘주변부의 목소리’로 넓혀야 할 시점에 있습니다. 조선의 미혼모와 양녀들이 남긴 흔적은 작고 희미하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보편적인 고통과 애정, 그리고 연대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마무리하며

조선시대에도 미혼모와 양녀는 분명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그 존재는 ‘기록되지 않은 역사’로 남아, 오늘날까지도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채 잊혀졌습니다. 조선 사회가 품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를 다시 써 내려가는 것은, 단지 과거를 이해하는 일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복지, 여성권, 아동보호의 기준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소중한 거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