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8월, 함경남도 원산. 이 조용한 항구 도시에서 한국 노동운동의 최초 불꽃이 피어올랐습니다. 당시 원산은 일제에 의해 개항된 후 일본 상인과 자본가들이 밀려들며 급격히 산업화되던 곳이었습니다. 특히 원산수산, 원산제사공장 등 어업과 방직업을 중심으로 한 외국계 기업들이 자리잡고 있었고, 그에 따라 조선인 노동자들의 유입도 활발했습니다. 그러나 임금은 낮고, 노동시간은 길었으며, 작업 환경은 위험천만한 수준이었습니다.
일제는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고, 그들의 언어를 억압하며 철저히 '싼 노동력'으로만 취급했습니다. 이런 억압 속에서 조선인 노동자들의 분노는 점차 쌓여갔고, 결국 ‘총파업’이라는 집단 행동으로 폭발하게 된 것입니다.
2. ‘원산총파업’의 전개 — 조직된 분노의 시작
1908년 8월, 일본 기업에 고용되어 원산에서 일하던 600여 명의 조선인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과 ‘작업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일제히 작업을 중단합니다.
이 파업은 단순한 ‘생계 시위’를 넘어서, 조선인이 스스로 조직하고 행동에 나선 최초의 집단적 노동운동이라는 점에서 획기적이었습니다. 파업은 단숨에 원산 지역 전체로 확산됐고, 그 여파로 약 3,000명 이상이 동조하거나 관심을 가졌습니다. 노동자들은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연대했고, 일본인 고용주들에게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제시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이 파업이 단지 일시적인 항의가 아니라, 계획된 조직과 전략을 동반한 항거였다는 것입니다. 이후 한국 노동운동의 모델이 된 이 총파업은 명확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조선인도 사람이다. 우리는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
3. 탄압과 해산 — 일제의 억압과 운동의 후퇴
하지만 일제는 조선인 노동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헌병과 경찰을 동원해 파업을 강제로 해산시키고, 주요 주동자들을 체포하여 투옥했습니다.
일본인 고용주는 일부 노동자를 해고하거나 블랙리스트에 올렸고, 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해 다시 비인간적인 노동 현장으로 복귀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결과만 놓고 본다면 파업은 ‘실패’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운동은 단지 결과로만 평가될 수 없는 역사적 전환점이었습니다.
당시 조선 사회는 ‘노동자’라는 계층 개념조차 희미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런 사회에서 원산 노동자들은 처음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집단적으로 주장했고, 억압에 맞서 당당히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들은 패배한 것이 아니라, 노동해방의 씨앗을 뿌린 것이었습니다.
4. 노동운동의 씨앗, 이후 어떻게 자랐는가
원산총파업 이후 노동자들의 저항은 전국적으로 점차 확산되었습니다. 1910년대 후반부터 1920년대에는 경성(서울), 인천, 평양 등지에서 파업이 발생했고, 1923년에는 경성방직 파업, 경성고무 파업 등이 전국적 이슈로 번지게 됩니다.
특히 1929년의 원산의 또 다른 대규모 파업은 1908년의 원산총파업에서 영감을 받아 조직되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렇듯 1908년 원산의 불씨는 단순한 사건이 아닌, 이후 조선 노동운동의 근간이 되었으며, 민족 해방운동과 결합하여 저항의 또 다른 축이 되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내내 노동자들은 고통 속에서도 끈질기게 싸웠고, 그 정신은 해방 이후 1970년대와 1980년대 민주노조 운동으로 계승되어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5. 다시 바라보는 원산총파업 — 우리의 뿌리, 우리의 시작
오늘날 우리는 ‘노동 3권’을 헌법으로 보장받고 있으며, 각종 노동법과 권리를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권리는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땀과 희생 위에 쌓여온 것입니다.
1908년 원산 노동자들이 보여준 용기와 연대는, 단지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유효한 노동자 권리의 상징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싸웠고, 그 정신은 이후 세대에게도 이어졌습니다. 원산총파업은 한국 노동운동의 ‘태동기’라는 의미를 넘어,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빛나는 민중의 외침 중 하나로 기억되어야 합니다.
마무리하며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입니다. 원산 노동자들이 외친 “우리도 인간이다”라는 외침을 잊지 않고,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남긴 땀과 목소리는 지금도 우리 안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