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한양의 거리 뒤편에서: 조선 말기 청소부들의 삶과 위생의 역사

한양의 거리 뒤편에서: 조선 말기 청소부들의 삶과 위생의 역사

조선 말기 청소부들의 삶과 위생의 역사

도성의 청결을 책임진 이들: ‘도성 청소부’란 누구였는가?

조선 말기, 한양 도성은 약 20만 명이 밀집해 살던 거대 도시였습니다. 오늘날처럼 정비된 하수도나 쓰레기 수거 체계가 없었던 시절, 도시의 위생을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죠. 이런 상황에서 ‘청소부’라는 직업은 도시의 일상 운영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습니다.

청소부는 주로 천민 출신이거나, 죄를 지은 후 강제로 부역에 동원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낮은 신분으로 분류되었고, 대개 이름조차 제대로 남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없었다면 거리의 오물과 쓰레기로 인해 전염병이 돌거나 도성이 마비되는 일이 빈번했을 것입니다. 말 그대로 '도성의 숨은 유지자'들이었던 셈이죠.

 

 

청소는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조선의 도시 위생 시스템

청소부들이 맡았던 일은 단순히 길거리의 쓰레기를 줍는 것을 넘어섰습니다. 동물 사체 처리, 분뇨 수거, 우물 주변 청소, 공동화장실 정비까지 포함된 매우 고된 업무였습니다. 당시 한양의 하수도는 땅속에 묻힌 ‘도랑’ 형태였으며, 비가 올 때만 물이 흘렀기 때문에 인위적인 정리가 필요했습니다.

청소 방식은 지역별로 구역이 나뉘어 있었고, 일정 인원이 각 구역을 순회하며 청소를 담당했습니다. 때로는 기생충 퇴치나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관청에서 특별 지시를 내려 집중 청소가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군사 조직이나 포도청의 인력이 함께 투입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도성 전체에 분뇨를 모으는 ‘뒷간 수거인’도 별도로 존재했는데, 이는 도시의 위생을 유지하고 농업용 비료로도 활용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처럼 조선 말기의 도시 위생은 단순히 미관 유지 차원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총체적인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차별과 멸시 속의 노동: 청소부의 사회적 위치

도성 청소부는 분명히 필수적인 존재였지만, 그들의 사회적 위치는 극도로 낮았습니다. '비천한 일'이라는 인식 탓에 이들은 일반 백성에게조차 멸시를 받았으며, 호적상 신분 상승도 어려웠습니다. 이는 유교적 사농공상의 계급 관념이 뿌리 깊게 박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부들은 일종의 ‘필요악’으로 묵시적인 인정을 받았습니다. 관청에서도 이들을 ‘필수직’으로 분류하며, 일정한 물자나 식량을 배급하기도 했습니다. 때때로 특별한 공로가 있을 경우에는 벌을 감면해주는 혜택이 주어지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병자호란과 같은 전란 중에도, 도성 내부 질서를 유지하는 데 있어 청소부들은 없어선 안 될 존재로 기능했습니다.

 

 

위생 개념의 도입과 도시 청소의 진화

19세기 후반, 서양 의학과 근대적 위생 개념이 조선에 들어오면서 도시 청소에 대한 인식도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일본의 침략과 함께 위생 정책이 국가 차원에서 제도화되면서, 거리 청소와 공중 보건에 대한 새로운 체계가 도입되기 시작했습니다.

청소부라는 직업도 점차 조직화되었고, 도성 내부에 ‘위생담당 구역’이 생기며 일정 인원이 고용되어 일하게 되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일정 급여를 받고 일하는 청소원도 등장했습니다. 이전의 ‘천민 노동’에서 점차 ‘시민 직업’으로 변화하는 과도기였던 셈이죠.

이런 변화는 단순히 직업의 전환을 넘어, 도시라는 공간이 위생과 질서, 건강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다시 정의되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었습니다.

 

이름 없는 손길들이 남긴 유산

도성의 청소부들은 기록에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그들이 남긴 유산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오늘날 서울이라는 도시가 위생과 질서, 공간 관리에 있어 하나의 전통을 갖게 된 데는 이들의 보이지 않는 노동이 기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도성 청소부’는 단순한 직업인이 아니라, 근대 이전 한국 사회가 위생과 도시를 바라보던 방식을 대변하는 존재였습니다. 비록 역사서 속에서 이름 없이 스쳐갔지만, 그들의 삶을 복원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 도시 생활의 근원을 돌아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마무리

한양의 위생을 책임졌던 청소부들은 시대의 변화를 몸소 감당해낸 조용한 주역이었습니다. 낙인과 멸시 속에서도 도시의 기능을 유지해온 그들의 이야기는, 현대 도시에서의 '보이지 않는 노동'을 다시금 되새기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