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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의 실크로드: 통일신라의 대외 해상 교역로와 아라비아 도자기

바다 위의 실크로드: 통일신라의 대외 해상 교역로와 아라비아 도자기
— 동아시아 끝에서 중동까지 이어진 신라의 바닷길 네트워크

바다 위의 실크로드: 통일신라의 대외 해상 교역로와 아라비아 도자기

1. 삼국 통일 이후, 바다로 눈을 돌린 신라

668년 삼국 통일을 완성한 신라는 한반도 전역을 통합한 정치적 안정 속에서 국력을 키웠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신라가 마주한 지정학적 현실은, 북쪽으로는 당나라와의 관계, 서쪽으로는 발해의 부상 등 육로 교역이 제한적이었다는 점입니다. 이에 신라는 해상 교역로 개척에 주력하게 됩니다.
남해와 동해를 따라 형성된 신라의 항구는 일본과 중국, 나아가 동남아시아·인도·아라비아까지 이어지는 바다 실크로드의 거점이 되었습니다. 신라는 바다를 통해 비단, 향료, 금속, 유리, 도자기 등 다양한 물품을 교역하며 국제무역 네트워크의 한 축으로 자리잡았습니다.

 

2. 해상 실크로드의 경로와 주요 거점

통일신라의 해상 교역로는 대략 다음과 같은 경로를 따라 이어졌습니다.

  1. 신라의 주요 항구 – 금관가야의 옛 거점 김해(금관항), 울산항, 동래(부산) 등이 중심.
  2. 일본 규슈와 세토 내해 – 왜국과의 교역 및 재수출 거점.
  3. 중국 남부 항구 – 당나라 절강성·광동성 일대, 특히 광저우(廣州)가 중요한 무역창구.
  4. 동남아시아 경유지 – 말라카 해협, 자바섬, 스리비자야 왕국 등에서 향료와 이국 상품 확보.
  5. 인도·아라비아·페르시아 – 해상 실크로드의 서쪽 끝. 이곳에서 유리그릇, 도자기, 향료, 금속 공예품 등이 동아시아로 전해짐.

이 경로를 통해 신라는 단순히 중국·일본과만 교역한 것이 아니라, 동서양을 잇는 국제 해상 무역망에 직접 연결되었습니다.

 

3. 아라비아 도자기, 신라 땅에서 발견되다

신라와 아라비아의 교역을 뒷받침하는 증거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라비아 도자기와 유리 제품의 출토입니다. 경주 황남대총, 안압지(동궁과 월지), 감은사지 등지에서 발굴된 유리병과 청록색 도자기는 당시 서아시아·중동에서 제작된 것으로 확인됩니다.
특히, 표면이 코발트 블루나 청록색으로 장식된 이슬람풍 도자기는 중국 남부를 경유해 신라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들은 단순한 장식품을 넘어, 신라 귀족층의 국제적 감각외래 문물 수용성을 보여주는 물증입니다.

 

4. 왜 중동의 물건이 신라에 왔을까?

중동, 특히 아바스 왕조 시기의 이슬람 세계는 해상 무역을 장악한 글로벌 상인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이슬람 상인들은 인도양을 거쳐 동남아시아와 중국까지 항해했고, 그 과정에서 신라도 간접적으로나마 무역망에 연결되었습니다.
아라비아 도자기나 유리그릇이 신라에 들어온 경로는 다음과 같이 추정됩니다.

  • 직접 경로: 중국 광저우 등 무역항에서 신라 상인이 아라비아 상인과 직접 거래.
  • 간접 경로: 일본·중국 상인을 거쳐 재수입.
    이러한 교류는 단순한 물품 교환이 아니라 문화·기술·미의식의 전파라는 부가가치를 만들어냈습니다.

 

5. 신라 사회와 국제 감각의 확장

아라비아 도자기의 존재는 신라가 폐쇄적인 내륙 왕국이 아니라, 국제적인 해양 문명을 받아들이는 개방적 국가였음을 보여줍니다. 귀족들은 이국적인 물건을 사용하며 자신의 지위와 세련됨을 과시했고, 장인들은 이를 모방하여 새로운 공예품을 제작했습니다.
특히, 유리그릇과 도자기는 당시 신라 도예 기술에 영향을 주어, 통일신라 특유의 청자와 토기 양식에도 변화를 불러왔습니다. 이는 단순히 ‘외래품 소비’에 그치지 않고 문화 융합을 촉진한 사례로 평가됩니다.

 

6. 해상 교역의 쇠퇴와 유산

9세기 이후 당나라의 해상 무역 정책 변화, 신라 내부의 정치 불안, 해적 활동 증가 등으로 해상 교역로는 점차 위축됩니다. 그러나 통일신라 시기에 형성된 국제적 감각과 기술 교류는 고려·조선으로 이어졌습니다. 고려청자의 기원에 중동 도자기 문화가 영향을 주었다는 학설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옵니다.
결국, 신라의 해상 교역로와 아라비아 도자기는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한반도가 세계와 연결되었던 흔적이며, 오늘날 한국이 글로벌 네트워크 속에 있는 뿌리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맺음말

삼국 통일 이후 신라는 바다를 통해 세계와 이어진 동아시아의 해상 네트워크 국가였습니다. 경주의 궁궐과 사찰에서 발견된 아라비아 도자기는, 천 년 전 이미 신라 사람들이 세계의 흐름 속에 있었음을 증명합니다. ‘바다 위의 실크로드’는 오늘날 우리가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역사적 선배의 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