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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전깃불과 전차 — 경성의 근대 교통·전력 혁명과 자본의 그림자

대한제국의 전깃불과 전차 — 경성의 근대 교통·전력 혁명과 자본의 그림자

대한제국의 전깃불과 전차

1. 전깃불이 켜진 경성, 근대의 문을 열다

1898년, 대한제국의 수도 경성(서울)에는 역사적인 변화가 찾아왔다. 궁궐과 주요 도로에 전깃불이 켜지고, 한성전기회사가 설립되면서 본격적인 전력 사업이 시작된 것이다. 전기는 단순한 기술 도입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그것은 개항 이후 뒤늦게나마 근대 도시로 변모하려는 대한제국의 의지를 상징했고, 동시에 외국 자본이 본격적으로 한반도 경제에 발을 들여놓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그리고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충격을 주는 사건이기도 했다.

 

2. 한성전기와 미국 자본의 선점

전기 사업은 처음부터 외국 자본이 주도했다. 한성전기는 미국인 콜브란(H. Collbran)과 보스트윅(H. R. Bostwick)이 주축이 되어 설립되었고, 경운궁(덕수궁)과 주요 관공서, 전차 노선 등에 전력을 공급했다. 당시 대한제국 정부는 자체 전기 기술이나 자본이 부족해 미국 측에 전력 사업 독점권을 부여했다. 그 대가로 일정한 세수와 기반시설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이는 장기적으로 국가 경제 주권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중요한 전기 자원임에도 불구하고 독점권을 부여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대한 제국 자체의 기술력이 형편없었기도 했고, 당시에도 기술자는 천대받는 위치였기에 기술 발전이 힘든 여건이었기 떄문이었다. 

 

3. 전차의 등장 — 경성을 달린 철마

1899년 5월, 경성 전차가 첫 운행을 시작했다. 종로와 한강 사이를 잇는 노선은 그야말로 ‘움직이는 근대’였다. 이전까지 사람들이 의지하던 것은 인력거, 말, 가마였는데, 이제는 전기로 달리는 대중 교통이 거리를 누볐다. 그러나 화려한 개통식 뒤에는 또 다른 현실이 숨어 있었다. 전차 사업 역시 한성전기가 독점했고, 운임은 당시 서민에게는 결코 저렴하지 않았다. 초기에는 승객 대부분이 상류층·중산층이었으며, 서민들은 여전히 걸어서 다니거나 값싼 교통수단을 이용했다. 이는 대한젝국의 한성에 사는 이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준 기물이기도 했다.

 

4. 일본 자본의 압박과 경성 전차의 변곡점

러일전쟁(1904~1905) 이후 조선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은 폭발적으로 확대됐다. 일본은 미국 자본이 운영하던 경성 전차와 전기 사업을 눈여겨봤고, 결국 정치·외교 압력을 통해 이를 인수하려 했다. 1909년, 한성전기는 일본의 경성전기회사에 매각되었고, 이는 대한제국 시절 미국 자본이 쥐고 있던 전기·전차 사업의 종말을 의미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도시 전력망과 교통망을 자국의 식민지 경영에 맞게 재편했고, 경성 전차는 이후 일본인의 도시 계획 속에서 운영되었다. 대한제국의 자원들을 채취하여 일본 본토로 운송하는 형식이었기에,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편리를 위한 운영과는 궤가 달랐다.

 

5. 근대 도시 경관의 변화와 빛의 양면성

전기의 보급과 전차 운행은 경성의 도시 풍경을 급격히 바꿔놓았다. 종로 일대는 밤에도 상점이 문을 열었고, 거리는 불빛과 광고판으로 채워졌다. 상권의 중심이 형성되면서 상인, 외국인, 관료가 뒤섞인 활기찬 분위기가 연출되었지만, 한편으로 도시 발전의 혜택은 일부 계층과 특정 지역에만 집중되었다. 전차 노선 밖의 지역은 여전히 전근대적 생활을 이어갔고, 서민들은 근대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마주해야 했다.

 

6. 외국 자본 경쟁의 실체

미국과 일본의 전기·전차 사업 경쟁은 단순한 경제 이권 다툼이 아니었다. 그것은 제국주의 열강이 조선을 어떻게 ‘현대화’라는 이름 아래 경제적으로 잠식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였다. 미국은 초기 투자로 기술과 운영권을 독점했고, 일본은 정치적 영향력을 활용해 이를 흡수했다. 결국 전기·전차 사업은 근대화의 동력인 동시에, 대한제국의 경제적 종속을 심화시키는 수단이 되었다.

 

7. 대한제국 근대화의 유산과 오늘의 의미

대한제국 시기의 전기와 전차 도입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다. 그러나 그 기반이 외국 자본과 기술에 의존했다는 점은 한계였다. 오늘날 서울의 전력망과 대중교통 시스템은 세계적인 수준이지만,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자본 주권을 지키지 못한 뼈아픈 역사가 자리한다. 역사는 ‘기술 도입’만큼이나 ‘누가 통제하는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 정리

대한제국의 전기·전차 사업은 경성의 밤을 밝히고 거리를 달리게 한 근대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그 뒤에는 미국과 일본 자본의 경쟁, 그리고 주권 약화라는 구조적 문제가 있었다. 근대화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았고, 빛이 켜진 그 순간부터 자본과 권력의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고 있었다. 약탈경제의 시작이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대한제국의 사람들이 감당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