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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을 새기다 — 고려 탑파 제작 기술과 불교 신앙의 확산

영원을 새기다 — 고려 탑파 제작 기술과 불교 신앙의 확산

― 석과 목, 장인의 손끝에서 피어난 신앙의 상징 ―

고려 탑파 제작 기술과 불교 신앙의 확산

1. 고려의 불교와 탑파의 만남

고려 시대는 불교가 국가 이념이자 사회의 정신적 기반이었던 시기입니다. 왕실은 물론 일반 백성까지 불교를 신앙의 중심에 두었고, 그 상징물로서 탑파(塔婆)는 필수적인 존재였습니다. ‘탑’은 부처의 사리를 모시거나 경전을 봉안하는 성스러운 구조물이었고, ‘파’는 이를 가리키는 고유 명칭이었습니다. 고려의 탑파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불교 세계관과 미학, 그리고 장인의 기술이 결합된 복합 예술품이었습니다. 

 

2. 석탑과 목탑 — 두 재료의 상징과 쓰임

고려의 탑파는 크게 석탑과 목탑으로 나뉩니다.

  • 석탑은 주로 화강암이나 사암을 사용해 제작되었습니다. 단단한 재질 덕분에 오늘날까지 비교적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습니다. 고려 석탑은 통일신라의 양식을 계승하되, 더 높이 올리고 세부 장식을 풍부하게 하는 특징을 보입니다. 옥개석(지붕돌)의 곡선이 부드럽고, 기단부에는 불교 경전 속 보살이나 사자·용 무늬가 정교하게 새겨졌습니다.
  • 목탑은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당시에는 사찰 중심부에 위용을 뽐냈습니다. 목재의 따뜻한 질감과 장식적인 화려함으로 불교의 극락세계를 표현했지만, 화재와 풍우에 취약해 소실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3. 장인 집단과 제작 과정

탑파 제작에는 목수, 석수, 금속 장인, 화공 등이 함께 참여했습니다. 석탑의 경우, 먼저 원석을 산지에서 채취해 거친 다듬질을 한 후, 제작 현장에서 세밀한 조각과 마감을 진행했습니다. 목탑의 경우, 목재의 건조와 가공, 맞춤 결구 기술이 핵심이었으며, 기둥과 보, 첨차를 정밀하게 설계해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장인들이 단순히 기술자가 아니라 불교 의식을 이해하고 상징을 해석할 수 있는 ‘문화적 해석자’ 역할을 했다는 점입니다. 각 층의 비례, 상륜부 장식, 탑신부의 문양 하나하나에 불교 철학이 녹아 있었습니다. 당시의 목수, 석수, 금속 장인들은 다른 기술자와는 달리 우대받는 위치에 있기도 했습니다.

 

4. 탑파의 구조와 상징성

고려 탑파는 보통 기단부–탑신부–상륜부로 나뉩니다.

  • 기단부는 대지와 하늘을 연결하는 ‘세속의 세계’를 의미하며, 사자·연꽃·구름무늬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 탑신부는 부처의 몸을 상징하고, 각 층이 곧 깨달음의 단계를 나타냅니다.
  • 상륜부는 하늘과 연결되는 신성한 영역으로, 보륜·보개·수연 등이 화려하게 장식됩니다.이러한 상징 구조는 불교의 우주관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당시 사람들에게는 ‘보는 것 자체가 공덕을 쌓는 행위’로 여겨졌습니다.

 

5. 불교 신앙 확산의 거점

탑파는 단순히 사찰 내부 장식이 아니라, 불교 신앙 확산의 중심이었습니다. 지방의 작은 사찰에도 석탑이 세워졌고, 주요 교통로 주변에 목탑이 들어서 순례객과 상인들의 발길을 이끌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탑파는 종교적 의미뿐 아니라, 지역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상징물 역할을 했습니다. 왕실은 대규모 석탑 건립을 후원해 불교의 권위를 강화했고, 귀족과 상인층도 기부를 통해 이름을 새겨 넣어 사회적 지위를 드러냈습니다. 불교 사원의 유명세도 가지는 장치이기도 했습니다.

 

6. 기술의 계승과 변화

고려 말에는 원나라와의 교류로 중국 북방의 석탑 양식이 도입되었지만, 고려 장인들은 이를 그대로 모방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곡선미와 장식을 더했습니다. 이러한 창의성 덕분에 고려 석탑은 ‘한국적 비례미’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조선 초기에도 일부 기술이 이어졌으나, 불교 억압 정책으로 대규모 탑 건립은 줄어들었습니다. 그럼에도 고려의 장인 기술은 소규모 석탑과 부도, 승탑 등에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불교 사원의 탑 건립은 힘들었지만, 양반들의 저택이나 서원 등에 필요한 석공 기술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7. 현대에 남은 고려 탑파의 가치

현재 보물이나 국보로 지정된 고려 석탑들은 대부분 당시 장인들의 손길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경천사지 10층석탑, 개성 경천사 석탑, 해인사 삼층석탑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들은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고려 사회의 종교·미술·건축이 집약된 산증인입니다. 또한 오늘날 목조건축과 석조건축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8. 결론 — 돌과 나무에 새긴 신앙

고려의 탑파 제작 기술은 종교적 신념과 건축 미학, 그리고 장인정신이 융합된 결과물이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불상을 모신 건물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우주관과 삶의 의미를 담은 ‘돌과 나무의 경전’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유산을 통해, 신앙이 어떻게 기술을 발전시키고 예술을 풍요롭게 하는지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