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수행의 교차로 — 고려 ‘승선(僧選)’ 제도와 고위 승려의 정치 무대
1. 고려 불교 정치의 제도적 틀, 승선
고려 시대 불교는 단순한 종교를 넘어 정치, 외교, 문화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그 핵심 제도 중 하나가 바로 승선(僧選)이었습니다. 승선은 국가가 고위 승려를 공식적으로 선발하여 종정(宗正)·판사(判事)·국사(國師)·왕사(王師) 등 주요 직책에 임명하는 제도였습니다.
이는 승려가 단순한 종교 지도자에 그치지 않고, 국왕의 정치적 조언자이자 국정의 한 축으로 참여하게 만든 제도적 장치였습니다.
승선은 국가 주도로 치러졌으며, 인물의 덕행·학문·종파 내 권위뿐 아니라 왕실과의 관계, 정치 세력 간 균형까지 고려되었습니다.
즉, 불교계 내부의 승진 제도가 아니라, 국가의 관료 선발처럼 공적인 절차로 진행된 것이 특징입니다.
2. 불교와 정치의 밀착 배경
승선 제도의 근저에는 고려 건국 초기부터 불교가 국교로 자리 잡은 배경이 있었습니다.
태조 왕건은 왕조 창업 과정에서 불교계의 지원을 적극 활용했고, 이를 정치 기반 강화에 이용했습니다.
왕실의 권위와 불교의 권위가 결합하면, 백성 통합과 국가 안정이라는 두 가지 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고려는 유교적 문치(文治)와 불교적 왕도정치가 병존한 체제였습니다.
유교가 제도와 법을 정비하는 역할을 했다면, 불교는 백성의 정신적 위안과 왕권의 신성성을 보강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승선 제도는 이런 구조 속에서 불교계 인사를 제도권 정치로 끌어들이는 공식 통로가 되었습니다.
3. 선발 절차와 승려의 자격
승선은 단순한 시험이나 추천으로 끝나는 절차가 아니었습니다.
왕명에 따라 선발위원이 구성되고, 불교계 고승·문신·관료가 함께 심사했습니다.
심사의 기준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계율 준수: 청정한 수행 이력과 사찰 운영의 청렴성
- 경전 이해: 대장경과 교학에 대한 깊은 지식
- 의례 집전 능력: 국가 제사·불교 의식의 주관 능력
- 정치 감각: 국정 자문에 필요한 상황 판단력과 외교 인식
승선에 뽑힌 승려는 단순히 불법(佛法)을 전하는 자가 아니라, 국가의 고문관, 외교 사절, 교육자 역할까지 수행했습니다.
4. 승선 승려들의 정치 활동
고위 승려들은 궁중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왕실 정책에 관여했습니다.
예를 들어, 국왕의 즉위식·대규모 불사(佛事)·국난 극복 기원 법회는 승선 승려가 주도했습니다.
또한 외교 사절단에 동행해 불교 네트워크를 통한 국제 교류에도 기여했습니다.
특히 거란, 송, 일본 등과의 관계에서 고위 승려는 ‘비공식 외교관’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는 종교인의 신분이 정치적 긴장을 완화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5. 승선 제도의 폐해와 부패
그러나 승선이 항상 긍정적인 기능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며 정치 세력과 불교계 일부가 결탁해, 승선이 권력과 재물을 얻는 수단으로 변질되기도 했습니다.
일부 승려는 사찰 재산을 사적으로 유용하거나, 왕실 비호를 등에 업고 지방 수탈에 가담했습니다.
이로 인해 조선 초기 성리학자들은 고려 말 불교 타락의 원인 중 하나로 승선 제도를 지목했습니다.
결국 조선 건국과 함께 승선은 폐지되고, 불교계의 정치 참여는 크게 축소되었습니다.
6. 불교 정치 참여의 역사적 의미
승선 제도는 고려 사회에서 불교가 얼마나 정치·사회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오늘날로 치면, 특정 종교 지도자가 대통령 자문위원, 문화부 장관, 외교 특사 역할을 동시에 맡는 것과 비슷한 위상이었습니다.
비록 말기에 부작용이 컸지만, 승선 제도는 종교와 정치가 긴밀히 협력하며 국가를 운영한 독특한 사례로 평가됩니다.
이는 고려의 정치 구조와 불교의 사회적 영향력을 이해하는 핵심 열쇠이기도 합니다.
7. 오늘날의 시사점
승선 제도는 오늘날 종교의 사회 참여 문제를 돌아보게 합니다.
종교 지도자의 사회적 역할이 순수한 봉사와 도덕성에 기반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제도화된 종교-정치 관계가 어떻게 권력화·부패화될 수 있는지를 경계해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