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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로 다리를 잇다: 정약용과 ‘거중기’, 조선 공학의 르네상스를 열다 기술로 다리를 잇다: 정약용과 ‘거중기’, 조선 공학의 르네상스를 열다 1. 조선 후기, 철학자만으로 보기엔 부족한 정약용조선 후기 실학의 거목으로 꼽히는 정약용(1762~1836)은 단순히 사상가나 개혁가로 기억되기엔 아쉬운 인물입니다. 그는 경세치용(經世致用), 즉 '세상을 다스리는 데 필요한 학문'을 지향한 실학자였고, 실용적 지식을 바탕으로 백성의 삶을 개선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정치제도 개혁에 대한 제언은 물론, 농업, 토목, 의학, 군사, 형벌 등 수많은 분야에서 저술 활동을 남긴 그는 '조선 르네상스형 인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특히 정약용은 '기술'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결과물 중 하나가 바로 거중기(擧重機)였습니다. 이는 단순한 도구 발명을 넘어, 조선식 공학의..
이방인의 피로 세운 나라, 조선: 이성계 가문에 숨겨진 외래의 뿌리 이방인의 피로 세운 나라, 조선: 이성계 가문에 숨겨진 외래의 뿌리 1. 한민족 왕조에 외국인의 피가? — 낯선 출발선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 흔히 우리는 그를 "고려 말 무장 집안 출신", "고려의 충신이자 개혁가"로 기억하지만, 이성계의 뿌리를 깊이 들여다보면 의외의 사실 하나가 드러난다. 바로 그의 가계가 외국인에서 시작된 ‘이민자 가문’이었다는 점이다. 한민족 중심의 국가라는 인식 속에서 왕조 창건자의 외래 혈통은 자칫 불편한 진실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조선이라는 나라의 포용성과 혼합의 역사를 드러내는 단서가 된다. 2. 이성계 가계의 시작: 신라를 떠돌던 이한경의 정체조선왕조실록과 고려사 등 사료에 따르면, 이성계의 시조는 이한경(李漢卿) 또는 이자연(李子淵)으로 불린다...
한양의 거리 뒤편에서: 조선 말기 청소부들의 삶과 위생의 역사 한양의 거리 뒤편에서: 조선 말기 청소부들의 삶과 위생의 역사도성의 청결을 책임진 이들: ‘도성 청소부’란 누구였는가?조선 말기, 한양 도성은 약 20만 명이 밀집해 살던 거대 도시였습니다. 오늘날처럼 정비된 하수도나 쓰레기 수거 체계가 없었던 시절, 도시의 위생을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죠. 이런 상황에서 ‘청소부’라는 직업은 도시의 일상 운영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습니다.청소부는 주로 천민 출신이거나, 죄를 지은 후 강제로 부역에 동원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낮은 신분으로 분류되었고, 대개 이름조차 제대로 남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없었다면 거리의 오물과 쓰레기로 인해 전염병이 돌거나 도성이 마비되는 일이 빈번했을 것입니다. 말 그대로 '도성의 숨은 유지자'들이었던 셈이죠. ..
백제 금동대향로, 신성과 상상력이 깃든 고대의 우주지도 백제 금동대향로, 신성과 상상력이 깃든 고대의 우주지도1. 찬란한 걸작의 발견: 금동대향로란 무엇인가?1993년, 충남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놀라운 유물이 출토된다. 바로 ‘백제 금동대향로’. 학자들은 이 유물을 보고 단순한 향로가 아닌, 백제의 정교한 금속공예 기술, 불교적 세계관, 그리고 동아시아 고대 철학이 응축된 총체적 예술품이라 평가했다. 높이 61.8cm, 무게 약 11.8kg. 전체가 금동으로 제작되었으며, 뚜껑과 몸체, 받침의 세 부분으로 구성된 이 향로는 마치 하나의 ‘소우주’처럼 느껴진다.이 향로는 단지 향을 피우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이 안에는 불교적 세계관, 산악 숭배 전통, 음양오행 사상, 그리고 왕권의 신성화까지, 다양한 관념이 복합적으로 담겨 있다. 백제가 남긴 가장 예술적인..
조선의 숨은 경제 엔진, 보부상 — 지방과 중앙을 잇는 유통의 힘 조선의 숨은 경제 엔진, 보부상 — 지방과 중앙을 잇는 유통의 힘1. 보부상이란 누구였나: 시장을 누빈 상업 조직의 실체‘보부상(褓負商)’은 '보상(褓商)'과 '부상(負商)'의 합성어로, 보자는 짐을 보자기에 싸서 머리에 이거나 등에 지고 다니며 장사를 한 상인이고, 부자는 물건을 등에 메고 다닌 이동 상인을 의미한다. 이들은 전국의 장시(場市, 시장)를 돌며 물건을 유통시키는 떠돌이 상인이자, 당시 지방 경제의 생명줄 역할을 했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이들은 자율적 상인조직으로 발전해 ‘보부상단(褓負商團)’이라는 조직적 형태를 갖추며 유통을 장악하게 된다.보부상은 단순한 떠돌이 상인이 아니었다. 이들은 유통망을 관리하고 조직 내 질서를 유지하며, 심지어는 국가로부터 공식 인정을 받기도 했다. 한양에서 ..
팔만대장경, 고려가 남긴 위대한 기술 유산과 국가 시스템의 집약체 팔만대장경, 고려가 남긴 위대한 기술 유산과 국가 시스템의 집약체1. 국가 프로젝트로서의 팔만대장경: 신앙을 넘어선 결집의 상징팔만대장경은 단순히 불교 경전을 정리한 종교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이는 13세기 고려가 국가적 재난인 몽골 침입에 맞서 국가 전체가 신앙과 기술, 조직력을 총동원한 결과물이었습니다.불력으로 국가를 수호하고자 하는 호국불교의 결연한 의지, 그리고 장기적인 외세의 위협 속에서도 정교한 대장경을 제작해낸 정신적 응집력은 그 자체로 하나의 위대한 ‘국가 메시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고종은 몽골의 침입에 대응해 국가의 안녕과 민심 수습을 위해 대장경 조성이라는 거대한 사업을 계획했고, 이는 단순한 신앙을 넘어 국가 주도의 정교한 프로젝트로 발전합니다. 조판 사업이 진행되던 시기는 전쟁과..
신라의 말, 한자로 쓰다 신라의 말, 한자로 쓰다‘이두 문서’에 담긴 고대 한국어의 잔향1. 고대 한국어를 품은 최초의 기록 방식, ‘이두(吏讀)’한국의 고대 문자는 처음부터 ‘국산품’이 아니었다. 삼국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한반도에는 토착 문자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기록과 공식 문서는 모두 중국에서 유입된 한자를 차용했다. 그 가운데 독특한 방식이자 고유의 문자처럼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이두(吏讀)다.‘이두’는 순수한 문자 체계라기보다 한자를 빌려 고유어를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신라·고구려·백제 등 삼국은 중국과 교류하며 한자를 받아들였고, 이 한자를 문법적으로 재조립하거나 독음을 차용하여 한국어를 기록하려 했다. 그 시도의 대표 격이 이두다.이두는 한자의 의미뿐만 아니라 발음까지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예컨대 신라어의 어순..
조선의 분쟁 해결사, '변계사목' 조선의 분쟁 해결사, '변계사목'— 국경 분쟁을 다스린 조선의 현장 외교 시스템국경의 최전선에서 외교를 실무화하다: 조선의 ‘변계사목’ 제도조선은 명확한 국경을 중요시한 나라였습니다. 특히 명나라와의 외교, 여진족 및 후금과의 대립, 대마도와의 해상 경계 문제 등 복잡한 주변 정세 속에서 국경 문제는 단순한 땅의 경계를 넘어 외교와 안보의 핵심이었습니다. 이러한 국경 관리를 실무적으로 담당한 조직이 바로 ‘변계사목’이었습니다. 이 제도는 국경 지역의 분쟁을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조정하고, 중앙과 지방 간의 외교 흐름을 잇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변계사목이란 무엇인가: 실무 외교 관리의 실체‘변계(邊界)’는 국경을 뜻하며, ‘사목(事目)’은 정책이나 실무 지침을 의미합니다. 즉, 변계사목은 국경 지역..